
내가 영화 추천해달라는 얘기를 들으면 은근히 자주 꺼내는 장르가 범죄 스릴러다.
로맨스나 코미디는 취향을 좀 타는데, 잘 만든 범죄 스릴러는 웬만하면 실패가 없다. 특히 한국영화는 이쪽 장르에서 진짜 잘하는 게 있다. 화면은 축축하고, 형사들은 지쳐 있고, 범인은 잡힐 듯 안 잡히고. 보고 있으면 내가 수사하는 것도 아닌데 괜히 피곤해진다.
이번에는 최신작보다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재미있는 영화 세 편을 골랐다. <살인의 추억>, <추격자>, <악마를 보았다>.
셋 다 범죄를 다루지만 재미의 방향은 완전히 다르다. 하나는 범인을 쫓을수록 답답해지고, 하나는 처음부터 범인을 알려주는데도 미친 듯이 긴장되고, 마지막 하나는 복수를 시작했더니 도대체 누가 더 악마인지 모르겠어진다.
너무너무 재밌게 봤던 세편 소개 들어간다.
1. 살인의 추억 | 범인을 찾는 영화인데 이상하게 웃기고, 또 무섭다
너무나도 명작이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밥은 먹고 다니냐' 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살인의 추억>은 예전에 처음 봤을 때보다 나이 먹고 다시 봤을 때 훨씬 좋았던 영화다. 어릴 때는 그냥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영화” 정도로 봤는데, 다시 보면 이 영화가 왜 아직도 계속 언급되는지 알겠더라.
송강호가 연기하는 박두만 형사와 김상경이 연기하는 서태윤 형사가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가 요즘 보는 수사물처럼 CCTV 돌리고 휴대폰 위치 추적하고 DNA 바로 확인하는 세상이 아니다. 배경이 1980년대라 진짜 몸으로 뛰어다닌다.
그러다 보니 수사 과정이 답답하다. 증거는 부족하고 비는 계속 오고, 용의자는 나오는데 확신할 방법이 없다. 지금 관점으로 보면 “아니 저렇게 수사한다고?” 싶은 장면도 꽤 있다.
근데 신기한 건 이렇게 무거운 사건을 다루면서 영화가 중간중간 엄청 웃기다는 거다. 형사들끼리 티격태격하는 장면이나 송강호 특유의 연기를 보면 피식 웃게 되는데, 방금 웃다가도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해진다. 이 온도 조절이 진짜 좋다.
특히 논두렁 뛰어다니는 장면이나 취조 장면처럼 워낙 유명해진 장면들도 다시 보면 괜히 유명한 게 아니다. 송강호와 김상경의 수사 방식이 완전히 달라서 둘을 보는 재미도 상당하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처음 봤을 때도 기억에 남았는데 다시 봐도 묘하다. 뭔가 엄청난 반전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송강호가 카메라를 바라보는 순간 기분이 이상해진다. 영화를 다 보고도 끝난 느낌이 잘 안 난다.
범죄 스릴러 좋아한다면서 아직 <살인의 추억> 안 봤다고 하면 나는 일단 이것부터 보라고 한다. 2003년 영화인데 지금 봐도 별로 오래됐다는 느낌이 없다. 현재 국내에서는 넷플릭스·티빙·왓챠 등에서 스트리밍이 확인된다.
2. 추격자 | 범인을 처음부터 알려줬는데 왜 이렇게 쫄리지?
"야 4885"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티비에서 연예인들이 너무나도 많이하는 성대모사이다.
<추격자>는 설정부터 특이하다.
보통 범죄영화는 “범인이 누구일까?”가 핵심이잖아. 근데 이 영화는 그냥 범인이 누군지 보여준다. 심지어 잡힌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영화가 시작된다.
김윤석이 연기하는 전직 형사 중호는 자신이 관리하던 여성들이 계속 사라지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다가 하정우가 연기하는 영민을 쫓게 된다. 문제는 범인을 잡았는데 결정적인 증거가 부족하다는 거다.
여기서 진짜 환장한다.
관객은 범인이 누군지 알고 있다. 무슨 짓을 했는지도 안다. 그런데 영화 속 사람들은 그걸 확실하게 증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보고 있으면 내가 경찰서에 뛰어가서 “아니 얘가 범인이라고!”라고 말해주고 싶어진다.
개인적으로 <추격자>는 세 영화 중 긴장감만 놓고 보면 제일 좋았다. 영화가 한번 달리기 시작하면 쉬어가는 구간이 거의 없다. 중호는 계속 뛰고, 경찰은 삽질하고, 관객은 점점 초조해진다.
하정우도 진짜 무섭다. 막 소리 지르고 눈 뒤집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 연기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차분해서 더 기분 나쁘다. 평범하게 말하고 가만히 앉아 있는데 “저 인간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계속 난다.
그리고 이 영화는 사람을 희망고문하는 데 정말 능하다.
“됐다, 이제 해결되겠네.”
싶으면 아니다.
“이번에는 진짜 되겠지?”
또 아니다.
이게 반복되니까 후반에는 그냥 화면을 붙잡고 보게 된다.
다만 꽤 잔인하고 불편한 장면이 있어서 가볍게 볼 영화는 아니다. 그래도 한국 범죄영화 중 한 편만 추천해달라고 하면 나는 아직도 <추격자>를 후보에 넣는다. 2008년에 나온 영화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속도감이 좋다.
3. 악마를 보았다 | 복수영화인데 보다 보면 복수하는 사람도 무섭다
<악마를 보았다>는 미리 말해두겠다. 잔인한 영화 잘 못 보면 굳이 도전하지 않아도 된다. 진짜 너무나도 세다...아직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너무나도 많다.
이병헌이 연기하는 수현은 약혼녀를 잔혹하게 살해한 범인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최민식이 연기하는 장경철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여기까지 들으면 흔한 복수영화처럼 보인다.
보통 이런 영화라면 주인공이 범인을 찾아서 마지막에 복수하고 끝날 것 같은데 수현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잡아서 죽도록 패고, 살려준다. 그리고 다시 찾아가서 또 잡는다.
처음에는 솔직히 통쾌하다. “그래, 저런 놈은 당해도 싸지.” 이런 생각이 든다.
근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조금씩 이상해진다. 수현이 복수에 집착하면서 점점 선을 넘어가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부터는 장경철만 무서운 게 아니다.
이병헌과 최민식 둘이 붙는 장면은 그냥 배우 보는 재미만으로도 엄청나다. 특히 최민식은 진짜 보기 싫을 정도로 장경철을 잘 연기한다. 변명할 여지가 없는 악인인데 이상하게 생명력까지 질기다.
그리고 이 영화는 “복수하면 속이 시원해질까?”라는 질문을 끝까지 끌고 간다.
처음에는 관객도 수현의 복수를 응원하게 만들었다가 나중에는 슬슬 “이거 어디까지 가려고 이러지?”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래서 단순한 범인 응징 영화로 끝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면에서 이병헌 표정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복수를 끝냈는데 전혀 승리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까지 해서 얻은 게 도대체 뭔가 싶어진다.
현재 <악마를 보았다>는 국내에서 넷플릭스·디즈니+·웨이브·왓챠·티빙 등 여러 OTT를 통해 스트리밍이 확인된다. 러닝타임은 2시간 24분이고 청소년 관람불가라 수위가 높은 편이다.
세 편 중 하나만 본다면?
이건 취향 따라 고르면 된다.
범죄영화인데 작품성이나 여운까지 챙기고 싶으면 <살인의 추억>
두 시간 동안 휴대폰 한 번 안 보고 쫄깃하게 달리고 싶으면 <추격자>
“오늘은 진짜 센 영화 한 편 보자” 싶으면 <악마를 보았다>
나는 친구가 세 편 다 안 봤다고 하면 <살인의 추억>부터 보라고 할 것 같다. 그런데 “오늘 밤 무조건 재밌는 거 하나만 골라줘”라고 하면 <추격자>를 틀어줄 것 같다. <추격자>는 진짜 중간에 끄기가 어렵다.
그리고 <악마를 보았다>는…
밥 먹으면서는 보지 마라...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다.... 진심이다...

